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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 김우환] 헌신과 희생

세상도 정치도 인생사도 돌고 도는 것이고 영원할 수 없기에 겸손과 배려의 예는 매우 소중...

박준민기자 | 기사입력 2020/09/01 [08:05]

[칼럼니스트 = 김우환] 헌신과 희생

세상도 정치도 인생사도 돌고 도는 것이고 영원할 수 없기에 겸손과 배려의 예는 매우 소중...

박준민기자 | 입력 : 2020/09/01 [08:05]

 (사진= 김수남 사진작가 작품)@ 박준민기자

 

희생과 헌신의 사전적 의미는,  희생은 “국가, 가족, 다른 사람 등 어떤 목적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바치거나 포기하거나 빼앗기는 행위”를 뜻하며, 헌신이란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 한다” 라는 뜻이라고 한다.

 

헌신과 희생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우리가 대체로 인지하고 있는 것은 헌신은 자발적인 의미가 있고, 희생은 자의성과 타의성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헌신에는 주로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겸손함이 있는 것이고, 희생은 누군가를 위해 하지 않으면 안되는 “해야만 하는 운명” 같은 당위성의 굴레가 있다.

 

성경에 보면, 에덴동산에서 살던 아담과 하와 부부가 하나님이 그것만 따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 먹으므로 죄를 지었음을 깨닫자 벌거벗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오히려 양 가죽으로 옷을 입혀 주었다.

하루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청천벽력같은 말씀을 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순종하여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가서 제물을 삼으려 하는데, 그 순간 하나님은 황급히 말리시며 이삭에 손을 데지 말라고 하시며 대신 수풀에 뿔이 걸린 염소를 준비해 주셨고 이 염소를 희생의 제물로 삼았다.

정치학자들은 이삭 대신 죽은 염소를 “희생양”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자부하면서 예로부터 충과 효의 예가 숭상되어 온 나라이다.

 

원광법사의 수신계 중에 사군이충(事君以忠) “임금(나라)에 충성을 다 한다”, 사친이효(事親以孝) “부모에게 효도를 다 한다”라는 계율이 있다.

부모는 자식을 낳을 때부터 오줌, 똥을 다 가리시고 성장과정 내내 굶지 않게 끼니를 보존하고 공부시키며 결혼케 하여 독립적인 가정을 이루게 한다.

 

당연히 해야 할 운명이라 생각해서 모든 것을 바쳐 희생한다.

 

자식들은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은 부모님 덕분이니, 연로한 부모님께는 자신의 연약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부모님의 마지막 생애를 돌보며 도리를 다하려 한다.

 

젊음도 잠깐이고 모두 늙음이라는 종착점에 이르게 되면 인생은 서로 서로를 의지하며 부족함을 채워 주면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더욱 깨닫게 된다.

요즘은 자식을 적게 낳다가 보니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희생은 예전보다 더 한데, 역으로 자식들의 생각은 “내 인생이 더 중요하거든요” 하면서 늙은 부모를 성가시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자연의 순환계인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끝난 것 같지만 또 다시 반복되는 것이 인생이고 우주의 법칙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1년의 봄. 여름. 가을. 겨울까지이다.

 

그 넘어의 영역은 내 것이 아니고 후손의 것이다.

 

요즘 60대를 낀 세대라고 한다.

 

늙은 부모님을 돌보지만, 앞으로 우리는 자식들에게 돌봄을 받지 못하는 희생양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신앙의 서적이나 고전적인 책을 보면서 인간의 세계를 유지하기 위한 체계를 마음 속에 먼저 세워 놓고 그 위에 삶의 지식들을 얹어야 한다.

있다가 없어지는 얄팍한 재미로만 마음의 성벽을 쌓는다면 인간만의 미덕인 예(禮)는 없어지고 인공지능의 효율성과 합리성이 우리의 이성을 지배하게 되고, 미래는 마치 정확한 기계의 부품처럼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풋풋한 풀 냄새가 좋듯이, 풋풋한 사람 냄새가 좋은 것이다.

 

그 풋풋함을 위해 사람들은 희생하기도 하고 헌신하기도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헌신과 희생 위에 세워진 나라이다.

                                              
허약한 국력과 지도층의 무능함으로 일제 36년의 세월을 보냈지만, 투철한 독립의 의지와 일본의 패망으로 광복을 맞이 했고, 동족이지만 이념이 다른 북한의 침략으로 한반도에는 자유민주국가 라는 명칭이 영원히 사라져 버릴 뻔 했지만 6.25에 몸 바쳐 싸운 지도자와 애국 국군으로 인해 가까스로 자유가 지켜졌다.

가난 속에서 “잘 살아보겠다”, “가난의 대물림은 하지 않겠다”는 굳은 신념이 지금의 경제발전을 이루어 냈다.

 

그 분들의 헌신과 희생이 지금은 그저 의미없어 보이는 희생양으로 치부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이는 군인이요, 도둑으로부터 백성을 지키는 것은 경찰이요, 억울한 사람들의 신원을 풀어주는 이는 법조인들이요, 무지로부터 백성을 지키는 것은 선생이요, 질병으로부터 백성을 지키는 것은 의사요, 자녀들을 지키는 이는 부모들이다.

군인과 도둑과 법조인과 선생과 의사와 부모가 제 역할을 다 하도록 지키는 것은 바로 나랏님이다.

 

진정한 헌신과 희생의 정신은 희생양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것이 무너지면 시대는 명분을 만들어 줄 많은 희생양을 필요로 한다.

하나의 법안이 수 많은 연결고리를 가지는 상황을 간과한다면, 천박한 다수결의 만용은 헌신자를 희생양으로 만들어 정치적 목적을 쉽게 달성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세상도 정치도 인생사도 돌고 도는 것이고 영원할 수 없기에 겸손과 배려의 예는 매우 소중하다.

                                                  

거룩한 헌신과 희생은 국가 유지를 위해 나랏님이 지속적으로 보존해 가야 할 최고의 덕목이 아닐까 한다. (강원종합뉴스 김우환칼럼리스트 글)

 

 

 

강원종합뉴스 북부취재본부 박준민기자 www.kwtotalnews.kr

joe91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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