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 맘 때 쯤 되면, 아내는 김장을 할 것인가 아니면 사 먹을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힘든 김장 대신에 그 때 그 때 먹을 만큼 사 먹고 싶지만 김장하길 은근히 바라시는 시어머니 눈치를 살피고서는 재료를 구입하기 시작한다. 배추는 유기농 평창 고냉지 절임 배추로, 무는 유기농 재배한 것을 밭에 가서 직접 사 오고, 양념류는 시장에 들려 최고급 새우와 액젓, 파, 갓 등을 사 온다.
마늘과 빛깔 좋은 고추는 이미 준비해 놓았고 오늘 김장 김치를 담그기 전에 나에게 힘든 작업을 도와 달라고 한다.
첫 번째 요청은 20여개의 굵은 무를 강판에 채 썰기를 하라는데 작업의 강도가 만만치 않다. 손과 팔의 힘이 많이 소요되는 공정이다.
어머니는 아들이 하는 것이 안스러웠는지 도마 위에 일부 무를 놓고 칼로 직접 썰으시는데, 한석봉 어머니의 떡 썰기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머니는 지금 86세의 연세지만 일정하게 가는 규격으로 빠른 속도로 썰어시는 모습이 전혀 녹 쓸지 않은 솜씨다.
두 번째 요청은 고추, 마늘, 새우 젖, 갓, 파 등을 한 다라에 넣고 두 손으로 버무르는 작업인데 골고루 섞어 맛과 고운 빛깔을 내는 것이 매우 힘든 일이였다.
양념 맛이 김치 맛을 내는 핵심이라 버무른 다음 양념 테스트를 한다.
숨 죽인 배추 한 잎을 버무린 양념에 찍어 어머니, 아내, 누님 세 사람이 맛을 보고는 “맵다, 달다, 좀 싱겁다. 짜다” 등 각자 표현을 하면서 "설탕 좀 넣자, 고춧가루 좀 더 넣자는 둥",... 양념 간을 맞춘다.
절인 배추를 가져와서 절반 혹은 4등분 하여 잎과 잎 사이에 양념을 고루 발라 김치통에 넣는다.
나도 몇 포기 시험 삼아 해 보았지만 이 부분은 숙달된 전문가가 해야 한다고 하길래 나는 자리를 비켰다.
김치가 한 포기씩 한 포기씩 완성되면서 드디어 김장 김치가 만들어지고 있다. 아내는 파김치와 배추 물김치를 별도로 담는다.
빳빳한 실파에 간이 배면서 파의 기세등등한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흐느적 거리는 상태를 파김치 됐다” 라는 표현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과거에는 양념 김치만 주로 먹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물김치의 시원함과 단백한 맛이 오히려 김치의 새 맛을 제공해 준다.
배추 세 박스 김치를 다 마치고, 겉절이 김치와 돼지 수육과 굴의 삼합으로 맛있게 점심을 먹는다.
겉절이 김치는 배추에 즉시 양념을 무쳐 먹는 것이라 비록 깊은 맛은 없지만, 배추며 굴이며 양념들이 살아있는 듯 사각사각 거리는 아사한 맛, 그리고 돼지 수육을 같이 먹으면 밥을 두어 그릇은 쉽게 뚝딱하게 하는 기막힌 맛을 제공한다.
세 번째 요청은,마의 벽인 설거지이다. 김장 전에 김치용기를 씻었고, 식후 그릇을 씻었고, 김장을 끝내고 냄비 다라 등을 씻었는데 저녁 설거지까지 합하면 이 날은 네 번의 설거지를 한다. 아내는 올해 김장은 내가 도와 줘서 생애 가장 쉽게 했다고 추켜세워 준다. 정성과 고급 재료를 사용한 만큼, 올 해 김장은 보배 같은 맛을 제공해 줄 것 같다. 어머님은 김치를 담글 때, 배추가 숨이 잘 죽었는지를 계속 확인하셨다. 천일염 소금이나 바닷물을 사용하여 적당히 배추의 숨을 죽여야 한다. 배추는 죽고, 또 잘 죽어야 유산균이 풍부한 맛있는 김치가 된다. 밭에서 수확 시에 한번 죽고, 소금물에 담가서 두 번째 죽고, 양념에 버무리면서 세 번째 죽고, 김치 통에 들어가 김치냉장고에서 네 번째 죽는다.
이렇게 완전히 죽고 나면 유산균이 풍부한 겨울 반찬 김치로 탄생하게 된다. 김치의 가치는 효능으로 나타나는데, 대체로 알려진 김치의 7가지 효능을 보면, 아토피, 피부염 등 알레르기 질환/ 항암/ 소화 촉진/ 항비만/ 유해균 억제/ 빈혈예방/ 혈관질환 예방 등이라고 하는데, 건강 뿐만 아니라 다이어트 효능까지 있다고 하니 김치는 만능 약제요 절세미인 같은 식품이다.
다음 날, 아내는 “이번 김장값 얼마 줄 건데”라고 묻는다. 어머님은 함께 김장한 누님 외에도 첫째 딸과 셋째 딸에게도 김장을 줬으면 하는 눈치를 읽은 아내는 고심 끝에 남은 양념장이 있어 배추를 다시 한 박스 더 주문했다고 한다. 항상 정의감과 배려하는 마음이 풍부해 늘 자신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지만, 장모님처럼 주는 기쁨을 아는 사람이다.
앞으로는,맛있는 김치를 위해 배추처럼 죽고 죽고 또 죽어야 하는 것처럼, "가정과 사회생활 가운데서도 이 처럼 잘 죽어야 공동체가 행복해지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김치가 그런 것처럼, ‘죽어야 산다(死卽生)’는 말은 언제나 진리이다.
저녁에 동생이 랍스타를 보내왔다. 맛있게 버터구이 요리를 해 먹으면서,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리는 김장하는 날이였다. (강원종합뉴스 김우환 칼럼니스트의 글)
강원종합뉴스 강원북부취재본부 박준민기자 <저작권자 ⓒ 강원종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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