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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영월 단종대왕 어진 봉안식 이모저모

28일 영월부관아(관풍헌)와 세계유산 장릉 경내 단종역사관에서 정부 선현표준영정 제100호인 단종어진 봉안식을 개최하였다.

최비경 기자 | 기사입력 2021/11/28 [18:47]

[포토] 영월 단종대왕 어진 봉안식 이모저모

28일 영월부관아(관풍헌)와 세계유산 장릉 경내 단종역사관에서 정부 선현표준영정 제100호인 단종어진 봉안식을 개최하였다.

최비경 기자 | 입력 : 2021/11/28 [18:47]

▲ 단종대왕 어진 봉안식  © 최비경 기자

 

 

 

 

 

 

 

 

 

 

 

 
강원 영월군은 오는 28일(일) 영월부관아(관풍헌)와 세계유산 장릉 경내 단종역사관에서 정부 선현표준영정 제100호인 단종어진 봉안식을 개최하였다.

단종어진 봉안식은 관풍헌에서 어진을 신연에 싣는 의식인 고동가제, 오후 1시 20분부터 오후 2시까지 관풍헌에서 장릉경내 단종역사관까지 봉안행렬이 이어졌다.

이어 사귀를 쫓고 경사로운 일을 맞이하는 벽사진경의식, 향정과 신연을 봉안하고 어진궤를 신연에서 받들어 탑상에 어진을 봉안하는 봉안의식과 작헌례, 공식행사, 축하공연, 군민과 관광객의 분향 순으로 진행되었다.

단종어진 봉안식이 열리는 28일은 음력 10월 24일로 이날은 564년 전인 1457년 숙부인 세조에 의해 관풍헌에서 사약을 받고 승하한 날로써 역사적의미를 지니고 있다.

단종어진 봉안식은 당초 제54회 단종문화제 기간 중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연기됐다.

단종어진을 모실 봉안행렬은 단종어진추사의궤(端宗御眞追寫儀軌) 5편 봉안제 의주(儀註)에 의거 단종어진 이봉반차도(移奉班次圖)를 기준으로 진행되며 인원 214명, 말19필, 신연, 향정, 의장기 등 38점이 동원되나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 100명 이하로 진행될 예정이다.

영월은 조선6대왕(1441-1457)이 승하한 곳이자 영월군민 삶 속에서 영원히 영면에 드신 곳이다. 영월군민은 단종 승하 후 끊임없는 추모와 의례로 소통을 이어왔고 단종어진은 영월군민과 단종의 얼이 소통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단종어진은 영월군민의 마음을 모아 2021년 4월 정부 선현표준영정 제100호 지정받았으며 단종어진은 영월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자 단종을 지키려 했던 268위의 충의정신으로 기억되고 있다.

단종어진의 용모는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용모기록과 국보 제317호인 태조어진용안, 2016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발표한 세조어진 초본용안을 참조해 추사(追寫)로 그려졌다.

또한, 규격은 가로 120㎝, 세로 200㎝로 비단에 채색되었고 정면 전신교의좌상으로 전통적인 장황기법인 족자로 제작됐으며 낙영과 유소가 함께 제작됐다.

영월군은 단종어진과 함께 단종어진의 제작 전 과정과 어진제작 추사기법을 담은 가로 23㎝, 세로 28㎝ 단종어진 추사의궤와 왕의 초상화인 어진 뒤에 드리우는 가로 346 세로 234㎝ 규모로 오봉병(日月五峯屛) 제작, 가로 688㎝, 세로 60㎝로 단종어진 봉안식 반차도를 제작했다.

단종대왕이 승하한 지 564년이 흐른 뒤 비로서 용안을 갖춰 영월에 봉안되는 의례는 영월과 맺은 세 번의 인연이 완성되는 의미이다

1457년 유월부터 가을까지 유배가 첫 번째 인연이라면 승하한지 200여 년이 지난 숙종 24년 단종(端宗)이라는 묘호로 추존돼 장릉 그 푸른 무덤으로 영월에 내생(來生)의 거처를 마련한 것이 두 번째이며 어진으로 봉안되어 어엿한 임금의 풍모로 되살아난 것이 그 세 번째 인연이다.

최명서 영월군수는 “어진봉안식을 통해 대내외적으로 단종의 삶의 궤적을 되돌아보고 장릉경내에 위치하고 있는 단종역사관에 영구봉안 함으로써 향후 후대에 남길 문화적 사료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사진제공= 영월군)
 
 
강원종합뉴스 제2취재본부(평창/영월) 최비경 기자
chalsk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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