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마당= 염노섭 기자] 강원도 최초의 전문인형극단인 춘천 무지개인형극단 김현순 대표를 동시 작가로 만났다.
어린 시절부터 품어 온 동시사랑이 마침내 강원문화재단의 생애 첫 지원사업으로 동시집 발간의 꿈을 이룬 것. ‘인형과 동고동락한 영원한 소녀’라는 별칭에 동시작가라는 이름을 더하게 된 것이다.
▲ 김현순 시인 '나 원래 그래' 동시집 저자 © 염노섭 기자
|
김현순 작가의 얼굴은 다양하다.
학교에서 연극 수업을 하기도 하고 손수 대본을 쓰고 인형극을 만들어 전국의 벽지 초등학교를 찾아다니며 무료순회공연을 펼치고 있는가 하면 노인, 장애인,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아이들과 매년 연극 공연을 올리기도 하고 여전히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그녀가 가장 원하는 삶은 읽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이제 그 꿈이 서서히 열매를 맺고 있다.
예전 춘천어린이회관으로 불리다가 현재는 KT&G 상상마당이라 불리는, 의암호가 내려다보이는 한 카페에서 만나 그녀가 낸 동시집에 실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저기 보이는 공간에 우리 극단이 10년이나 있었어요. 춘천시의 배려였죠. 저기에 소극장도 만들고, 매주 인형극 상설 공연도 올리고. 지금 생각하면 꿈만 같아요.”
춘천시의 대표 브랜드인 인형극과 연극 강사로 살아온 덕분에 생계를 이어왔던 감사한 마음도 크지만 그 생활이 있었기에 오늘의 동시집 발간이 가능했다는 것으로 더더욱 감사하다고 한다.
그녀 자신이 어릴 적 살았던 동심의 세계는 물론 세 아이를 키우면서 마주했던 상황들, 아이들 곁에서 느꼈던 경험들이 그녀의 동시에 다 들어있다고 하면서 동시마다 구구절절 사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져 나갔다.
심지어 동시에 나오는 '고무줄', '빙그레' 낱말의 뉘앙스를 가지고 심층 대화를 꽃피웠다.
그는 어릴 적부터 시인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뭘 써내라고 할 때마다 그 글들에 상을 주고 여기저기 대회에 불려 다니면서 자신은 글을 엄청 잘 쓰는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무작정 크면 시인이 되고 싶었다고, 아니 돼야 하는 줄 알았다는 거다.
이렇게 자뻑하는 마음으로 살아오면서 이제 거의 육십이 다 되어가는 마당에 겨우 한 권의 시집을 냈지만 그런 자기를 ‘나, 원래 그래’라고 도닥이는 마음,
지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살며 그 마음이 변치 않은 탓에 최근 첫 동시집 ‘나 원래 그래’를 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니 시인의 말에 나오는 것처럼 기쁘기도 하지만 부끄러운 마음이 더 크며 죽을 때까지 ‘언제나 시를 쓰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이번에 펴낸 동시집에는 구름을 찍은 사진이 두 장 들어있다. 구름 사진을 찍고 그 사진에 장난처럼 몇 개의 선을 그려 넣은 이는 시인의 둘째 딸, 배수빈으로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은 강원대학교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있단다. 그 딸이 중학교 다닐 때 시인에게 보내주었던 것을 갖고 있다가 이번에 표지사진과 “나 원래 그래” 시 옆에 나란히 실었다. 요즘 아이들이 다 그렇듯 엄마하고 연락도 잘 안하고 있어 허락도 안 받고 넣다보니 출처를 밝히는 것으로 허락을 대신했다고 한다.
이 책의 제목인 ‘나 원래 그래’는 강원아동문학회로부터 ‘좋은 작품상’을 받은 작품이다. 그런 상을 받게 될 줄은 전혀 짐작도 못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그 상의 후보로 여러 번 호명되었고 자신의 시를 알아봐 준 심사위원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이번에 시집의 제목으로 삼았다고 한다.
강원아동문학회에서 주는 신인작가상을 받으면서 시인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에 대한 감사도 들어있다.
나 원래 그래
김 현 순
딱지 딱지 껌딱지
어릴 때 나는 껌딱지였대
우리 엄마 껌딱지
엄마가 떡볶이를 해 놓고 부를 때는
지금도 껌딱지지
하지만 요즘 나는 가끔
고무줄이 되기도 해
수학 문제 못 푼다고
머리 쥐어박힐 때
숙제 안 하고 논다고
잔소리 들을 때
팽팽하게 늘어난 고무줄이 되지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고무줄이 되지
나 원래 그래
|
누구라도 자기 자식을 가르치기 힘들다는 것은 실감할 것이다. 소위 엄마표 공부를 가르치다 보면 남의 자식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꿀밤 먹이기를 하게 되는데 시인의 막내딸이 초등학교 5학년 때 겪었던 그 일을 평생 두고두고 상처로 갖고 있는 것을 보고 반성하는 마음으로 썼다고 한다.
평소 엄마에게 껌딱지처럼 가깝게 느꼈던 마음이 끊어질지도 모를 정도로 멀어져 가게 만드는 일이 엄마로부터 겪은 ‘머리 쥐어박히기’와 '숙제하라는 잔소리'라는 자각은 통렬한 반성을 갖게 했고 아이들의 여린 마음을 들여다 보는 계기였다고 한다.
고무줄이 늘어났다가 다시 줄어드는 회복탄력성을 가진 것처럼 이 땅의 부모와 아이 사이가 멀어질대로 멀어졌다가도 다시 껌딱지처럼 가까워지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김현순 시인은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현재에도 한국방송대 대학원 문예창작콘텐츠학과에 적을 두고 있다는데 공부하는 게 재밌다니 시인은 별종임에 틀림없다.
일상에서 다양한 대상들과 연극으로 놀고 배우며 익히면서 인형극과 연극하는 사람으로 언제나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그녀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응원한다.
▲ 2024년도에 만나 연극으로 함께했던 어르신들과 동시집 출간 축하자리(김현순은 감사하고 행복해요!) © 염노섭 기자
|
김현순 시인은 말한다.
“다시 어린이로 돌아간다면 많이 웃고 싶어요.
신나게 놀고 싶구요. 착해지고 싶어요.
어린이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많이 웃고 신나게 놀고 착해질 수는 있겠죠?
그럴 수 있는 지금의 나를 좋아할래요.
나를 있는 그대로 좋아할래요.”
‘나 원래 그래’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그녀의 말은 그녀의 꿈이랄까.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의 바람이요, 희망이 아닐까.
참 힘들었던 2024년을 넘겼다. 정말 힘들었다. 슬펐다. 절망이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지난 해는 그렇게 끝났다.
한 해의 끄트머리에서 김현순 시인을 만난 것은 긴 터널의 어둠을 지나서 미래 희망의 빛을 본 느낌이다.
새해에는 김현순 시인이 더 많이 웃고, 더 신나게 놀고 더 착해지는 을사년이 되기를 바란다.
이 동시집은 강원특별자치도 강원문화재단 후원으로 발간되었다.
강원종합뉴스 춘천지사 염노섭 기자
www.kwtotalnews.kr